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문단 편집) == 역사 == 인민해방군의 전신인 중국 공농 홍군 및 팔로군은 오직 육군만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공군은 1949년 국민당을 패퇴시킨 후에야 창설되었다. 건국 직후에는 국민당군에게서 노획한 미제-일제 항공기들 및 투항한 국민당군 출신 조종사들밖에 없었는데, 이들은 온전한 전력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항공기의 미제-일제 부품도 구하기 힘들었을 뿐더러, 이들 투항 조종사들은 충성도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에 작전에서는 배제되었고 주로 교관이나 관리직으로만 돌렸다. 예를 들어 1950년 국경절 경축 비행에서 곡예비행을 할 수 있을만큼 숙련된 국민당군 출신 조종사들이 돌출행동을 벌이거나, 비행기를 몰고 대만으로 망명할 까봐 가족을 인질로 잡아놓고 비행에 내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에 개입을 결정하면서 소련의 도움으로 대거 비행사관을 양성하고, 당시 최신예기인 [[MiG-15]]를 도입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초반에는 겨우 몇개월 비행훈련을 거친 파일럿들이 모는 MiG-15나 MiG-9 제트전투기가 숙련된 미 공군-해군의 프로펠러기에게도 사정없이 털리지만 중후반이 되자 어느정도 적응하며 여러명의 에이스까지 배출했다. 이어 소련과의 라이센스 협정으로 1960년대 중반시점에서 최신예기인 MiG-21까지 자체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1960년대까지는 세계 흐름에 맞춰가던 중국 공군은 소련과의 사이가 나빠지고 [[문화대혁명]]등의 여러 국내 문제가 벌어지자 미국, 소련이 중심이된 공군의 흐름에 뒤떨어지게 되었다. 타 국가가 5세대 스텔스기를 개발하기 시작하는 1990년대 초반까지는 3세대 전술기를 양산하고 있었으며, MiG-21을 베이스로 한 J-7, J-8이 주력기였었다. 1980년대는 당시 사이가 좋았던 미국의 도움으로 현대화를 개시하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톈안먼 사태]] 이후 미국과의 공군 교류는 전면 중단되었으며 오히려 과거의 적국이었던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공군 현대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공군 현대화에 부심하던 중국군은 1994년 Su-27 (J-11) 라이센스 협정을 맺으면서 활로를 뚫게 되었다. 이어 2000년대 초반에 4세대 전술기 J-10을 개발했고 2010년대에는 스텔스 전투기 J-20까지 개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